
– 탬파에서 국제결혼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것
가끔 그런 날이 있다.
나는 한국 사람인데
한국 사람 같지 않고,
미국에 살지만
완전히 미국 사람도 아닌 것 같은 날.
그럴 때면 문득
“나는 왜 이렇게 박쥐 같은 인생을 살고 있지?”
하는 서러운 생각이 든다.
국제결혼을 하고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모든 게 영화 같을 줄 알았다.
야자수, 넓은 도로, 자유로운 분위기.
탬파의 햇빛은 정말 아름다웠다.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과
외로운 마음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남편 가족들과 식탁에 앉아 있어도
웃는 타이밍을 몰라 어색했고,
농담은 반도 이해 못 했다.
다 같이 웃는데
나 혼자 늦게 웃거나,
그냥 따라 웃은 적도 많았다.
영어를 못해서 답답했던 게 아니라,
내 마음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게 서러웠다.
한국말로는 표현할 수 있는 감정들이
영어로는 자꾸 단순해졌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은
내가 미국에서 편하게 사는 줄 알겠지.
“미국 좋지?”
“넌 이제 미국 사람이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괜히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이 들었다.
미국에서는 동양인이고,
한국 가면 미국 사람 같다고 하고.
나는 어디에 완전히 속한 사람일까.
탬파에서 오래 살다 보니
내 안에도 미국식 사고방식이 생겼다.
눈치보다 솔직함이 편해졌고,
가족보다 개인의 시간을 존중하게 됐다.
그런데 또 한국 사람 특유의 정과 책임감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래서 더 헷갈린다.
한국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내가 너무 미국 사람 같고,
미국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내가 너무 한국 사람 같다.
마치 어디에도 완전히 착륙하지 못한
박쥐 같은 기분.
국제결혼은
사랑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문화 차이, 말투, 생활 습관,
돈에 대한 생각, 가족 관계까지
모든 걸 다시 배워야 했다.
한국에서는 당연했던 것이
여기서는 이상한 게 되기도 하고,
미국에서는 자연스러운 행동이
내게는 차갑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싸우는 이유조차
문화 차이일 때가 많았다.
나는 “정”을 기대했는데
상대는 “개인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나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랐고,
상대는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다.
처음엔 그게 너무 서운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됐다.
나는 반은 한국 사람이고,
반은 미국 사람이 된 게 아니라,
그 사이 어딘가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는 걸.
이민자의 삶은
원래 조금 애매한 자리인지도 모른다.
완전히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완전히 미국 사람이 될 수도 없는 삶.
그래서 더 단단해지는지도 모른다.
탬파의 저녁 노을을 보면
가끔 마음이 조용해진다.
하늘도 완전히 파랗지 않고,
완전히 주황색도 아니다.
그 사이 어디쯤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이 만들어진다.
어쩌면 우리 같은 이민자들도 그렇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것 같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깊은 색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
지금도 가끔
“박쥐 같은 인생이네…”
하며 서러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건
이제는 안다.
그 애매한 위치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걸.
두 문화를 이해하고,
두 언어로 웃고 울고,
두 세계를 오가며 살아낸다는 건
생각보다 대단한 일이었다는 걸.
그래서 오늘도 나는
탬파의 햇빛 아래서
조금은 한국 사람처럼,
조금은 미국 사람처럼,
그리고 결국은 그냥 “나답게” 살아간다.
댓글 남기기